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라이언 존스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밴드 내 기타를 주 전문으로 하는 [[기타리스트]]들 중에서는 거의 시조격 인물이다.[* 이전에 [[척 베리]]나 [[비비 킹]] 같은 솔로 기타리스트는 존재했지만 하나의 정립된 밴드 내에서 기타를 주전문으로 하는 인물은 이 사람이 거의 최초라고 볼 수 있다. [[조지 해리슨]]도 대표적인 비틀즈의 연주 전문가였지만, [[싱어송라이터]]로서의 활동이 더 두드러진다는 것을 감안할 때 록밴드의 전문 기타리스트로는 브라이언 존스가 거의 시조격이자 대표주자라고 볼 수 있다.] 60년대 중반부터는 기타 하나에 치중하기 보다 다양한 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. * 깔끔한 귀족적 이미지[* 물론 사망 직전에는 각종 마약을 너무 많이 한 탓에, 같은 밴드의 키스 리처즈 혹은 믹 재거 못잖은 폐인 이미지가 되었다.]를 자랑하며 여자들에게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고[* 피임을 잘하지는 못했는지 사생아도 4명이나 만들었다.][* 밴드의 주변인들은 믹 재거가 브라이언이 여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것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는 동시에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.[[https://www.theguardian.com/music/2023/may/07/nick-broomfield-brian-jones-rolling-stones-arena-documentary-interview|#]]] 온갖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을 보였으나,[* "1980년대에 [[프린스(음악가)|프린스]]가 있다면 1960년대에는 브라이언 존스가 있었다"는 말이 생길 정도.] 밴드 내 비중 저하[* 밴드의 방향성 변화가 제일 큰 원인으로 꼽힌다. 과거 브라이언이 우세하던 시절은 블루스 위주의 밴드였지만, 어느새부턴가 로큰롤로 성향이 변하며 브라이언은 연주가 1 정도로 지위가 떨어졌다.]와 동료 [[키스 리처즈]]의 [[NTR]]로 인한 우울증 문제와 마약 문제를 겪다가 1969년에 재거-리처즈 듀오에 의해 전격적으로 밴드에서 축출당했고, 결국 같은 해 수영장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.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[[27세 클럽|27세]]였다. [[분류:영국 남가수]][[분류:영국의 기타리스트]][[분류:1942년 출생]][[분류:1969년 사망]][[분류: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]][[분류:익사한 인물]][[분류:롤링 스톤스 멤버]][[분류:첼트넘 출신 인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